화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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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당신은 무엇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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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삶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아니면 이렇게 묻겠다. 너는 삶(Life)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너의 최고 잠재력은 무엇인가?

서두르지 말고, 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라. 기억하라, 틀린 답이란 없다. 너의 모든 답은 옳다. 중요한 것은 그 답들이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가이다. 그 답들로 인해 너는 편안한가, 너의 가슴은 기뻐하는가, 너의 영혼은 노래하는가, 너는 너 자신과 너의 답들, 너의 소망들에 영감을 받는가? 그것들을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 알고 있는가? 그것을 이루어낸 사람들의 본보기가 네 앞에 있는가? (물론 인스타그램의 화려한 이야기들은 제외한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이 마케팅에 불과하며,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많은 돈을 벌게 해주어 안락하게 살게 해줄 거라 주장하는 쓸모없는 물건, 화장품, 강의, 타인의 지식 따위를 팔려는 시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진정 신뢰할 수 있는 살아있는 본보기가 있는가?

너는 진정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너에게 있어 행복이란 무엇인가?

만약 네가 우리에게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모든 것은 단순하다. 우리의 행복은 사랑 안에 있다. 사랑은 우리의 모든 질문과 필요에 대한 답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너는 무엇이 너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있게 만드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아니, 아침 커피나 휴대전화의 알림이 아니다. 삶은 마음속에,

사랑이 깃들 때 비로소 살아난다. 진정한 사랑.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바로 그 사랑. 그렇다, 모든 것은 이처럼 단순하며... 동시에 웅장하다!

하나님은 단순한 추상적 관념이나 성화 속 엄격한 얼굴이 아니다. 하나님은 삶 그 자체이자 힘, 진리, 기쁨, 그리고... 사랑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의 근원이시다. 하늘의 별부터 네 얼굴에 번지는 미소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세상의 영원한 태초이자 만물의 총체적인 최고 잠재력이시며, 자신의 창조물의 면류관이시다. 하나님은 너를 너 자신으로 만드는 존재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네 안에 계시며, 네가 진정한 신이 되는 신화(神化)라는 최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현하기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렇다, 신(god)이다. 너는 바르게 읽었다. 놀랐는가? 그렇다면 계속 읽어보아라.

사랑은 우리를 내면에서부터 채우는 바로 그 무한한 생명의 흐름이다. 사랑은 따스하게 감싸고, 영감을 주며, 치유하고... 부활시킨다. 사랑은 메시지의 하트 이모티콘이나 뱃속의 간지러운 설렘 따위가 아니다(비록 그것도 기분 좋겠지만). 그것은 지고의 축복과 평온, 힘과 완전한 용서, 영감과 진리에 대한 깊은 공명의 상태이다. 사랑은 네가 말 그대로 삶으로 부활하게 되는 궁극의 환희이다. 바로 삶으로! 그것은 네가 단지 이해하는 것을 넘어 온 존재로 느끼는 순간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됨으로 관통되어 있음을. 그리고 너는 이 거대한 퍼즐의 중요한 일부임을.

사랑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랑의 근원은 단 하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네가 이를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너는 다른 온갖 것들을 경험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호르몬의 작용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가까운 이들을 사랑하거나 자녀를 사랑하는 것, 혹은 반려동물이나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시인들이 찬미하는 그런 것도 아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살아갈 수 있다. 너의 짧디짧은 인생을. 살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네가 진정으로 삶의 의미와 진정한 사랑, 즉 자유와 힘과 환희, 그리고 충만한 만족감을 알고자 한다면, 너는 그분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네가 이 근원을 네 안에서 발견하기 전까지는, 사랑이 너를 다시 살려낼 수 없다. 알다시피, 물이 없어 말라가는 꽃처럼 말이다. 그러나 네가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사랑은 네 안으로, 그리고 너를 통해 이 세상으로 흘러넘치기 시작할 것이다. 바로 여기서 기적이 시작된다. 네 존재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신성한 씨앗이 깨어나 진정한 삶의 의미로 자라나기 시작하며, 너의 최고 잠재력을 꽃피운다.

사랑의 신성한 씨앗을 네 안에서 키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네 안에 아주 작지만 무한히 강력한 씨앗, 즉 신성한 씨앗이 있다고 상상해 보아라. 그것은 네가 사랑으로 물을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면 그것은 자라나 생명의 나무가 될 것이며,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것은 세상에 사랑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내고, 말 그대로 네 앞에, 네 안에 영원한 생명의 문을 활짝 열어줄 신성한 은사들과 재능, 천재성이다. 이 씨앗을 키운다는 것은 스스로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허락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받는 것을 뜻한다. 네 안에서 이 씨앗을 키우는 것 자체가 바로 신화(神化)이며, 하나님께서 너를 구상하셨던 본래의 모습—빛나고, 강하며, 기쁨에 차고, 충만하며, 창조적인—너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는 창조자이자 너의 세계의 신, 그리고 그 세계를 향한 사랑의 근원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네가 사랑을 받아들일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너는 신성한 사랑의 통로가 된다. 너는 진정으로 살아나게 된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온전하고 충만한 삶이다. 그리고 진정한 삶, 사랑 안에서의 삶이야말로 바로 영원한 생명이다. 그것은 결코 멈출 수 없다. 너는 이 사랑을 다른 이들과 나누기 시작하며, 그들과 온 세상을 빛과 기쁨, 은총으로 채우고—네 안과 주변의 삶을 더욱 번성하게 만든다.

어떻게 이 사랑에 마음을 열 수 있는가? 그리스도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하신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러한 역설이 존재한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는 언뜻 보기에만 역설일 뿐이다. 사실 여기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실로 쉽다. 그분 자신이 친히 너에게 이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이다. 단지 이를 향한 너의 열망, 진실한 바람, 그리고...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는» 믿음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너에게 (잠시 후에) 그것들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그리고 너의 바람, 너의 감정, 너의 생각, 너의 믿음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너의 몫으로 남는다. 이 사랑을 요구하고 사랑에 마음을 열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이단에 빠지지 않기 위해 현명하게 한 걸음 물러서 있을 것인지» 말이다. (미소.)

참고로 우리는 정교회를 지지한다. 소박한 러시아 정교회를. 하지만 우리는 이슬람 또한 지지한다. 진정한 이슬람을. 우리는 베다를 사랑한다. 우리는 유일자의 무수한 측면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슬라브의 고유 신앙을 사랑한다. 우리는 열반과 참된 열락을 추구하는 불교도들을 사랑하며, 그들은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진심으로 우리의 사랑을 찾고 마음을 여는 모든 이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화합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곧 화합이다. (미소.)

그리고 놀라운 것은... 네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순간, 의무나 책임감에서가 아니라 너 자신의 살아있는 열망과 의지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 너에게서 근원이신 그분께로 향하는 그분의 사랑을 네 안에서 발견하는 순간, 너는 자신이 그분께 사랑받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참 잘했다"는 칭찬 따위가 아니라, "너는 나의 것이며, 나는 너의 것이고, 우리는 하나다. 나는 언제나 너를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라는 선언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진다. 그것은 의무가 아니라,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지고의 기쁨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그분과의 연결을 자각하고, 네 안과 주변에서 그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삶을 의미와 기쁨, 빛으로 채우는 길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우리가 화합과 일체, 기쁨, 영감, 그리고 천상의 여왕이신 사랑 그 자체가 다스리는 자신만의 현실을 자각하는 창조자가 되도록 돕는다.

사랑은 다면적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이고 스스로 체화하는 사랑의 면모들은 무한히 다양하다. 그 광대한 스펙트럼을 네가 깨달을 수 있도록, 여기 몇 가지를 들어본다.

힘: 사랑은 무적의 힘이자 갑옷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영으로 인간을 강건하게 하고, 약한 자를 강하게, 두려워하는 자를 두려움 없게,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만들며, 생명의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온유와 겸손: 사랑은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지 않지만, 이는 희생자의 굴종이 아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고 폭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힘의 온유함이다. 사랑은 세상과 하나이기에, 내면의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외부 세계에 변화를 일으킨다. 너의 세상에. 왜냐하면 너는 다른 이들에게도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할 권리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수용: 사랑은 조건이나 요구 없이, 모든 이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용서: 원망을 놓아버림으로써 우리는 빛을 맞이할 마음의 공간을 비운다. 그리고 오직 사랑만이 진정으로 용서할 줄 알며, 오래된 감정적 상처까지도 치유한다.

감사: 모든 순간에는 하나님의 무한한 선물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깃들어 있다.

자유: 진정한 사랑은 자유를 준다.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자유를 주며, 타인의 선택을 존중한다.

선함: 사랑에서 우러나온 단순한 행동들이 커다란 변화를 창조하여, 영혼들을 진실함과 선함으로 깨운다. 슬라브어 부크비차에 기록되어 있듯이 '선(Добро)은 곧 삶(Жизнь)'이다.

지혜: 사랑은 지성의 지식이 아닌 진리로서, 초지식으로서 명료한 감각 속에 드러나는 궁극의 지혜이다. 너는 온 마음과 온 영혼과 온 뜻으로 이해하고, 알고, 보게 된다. 사랑 안에서 너의 뇌는 100퍼센트 가동되기 시작하며,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천 퍼센트를 더해주신다.

일체: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의 전체로 결합하시며, 더 위대한 것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을 선물하신다.

창조성: 사랑은 우리 안의 새로운 재능을 깨우고, 우리 자신과 주변 세상을 변모시키며 창작하고 건설하도록 영감을 주어—삶 그 자체를 더욱 확장한다.

환희: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지고의 환희이며, 어떠한 외부적 요인에도 흔들리지 않는 가장 생생하고 진실한 기쁨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와 우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정작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인간이여, 우리는 네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 너의 진정한 행복은 과연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원천: 라도미르 · «사랑의 성찬»

WEBREATH · 11:11

«In every moment lies an opportunity to thank God for His infinite gift» — Communion of Love 2

Breath is one for all: everyone lives by it, whoever they are and whatever they believe. Every day at 11:11 local time people stop for sixty seconds, breathe, and thank GOD for the breath — each in their own words, each within themselves. In that minute we are One Breath.

WEBREATH — the Minute at 11:11, your own local time — we are One Breath